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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흔살의 관점 - 헬렌 니어링과의 대담

가야트리샥티 2013. 12. 31. 20:26
아흔살의 관점 - 헬렌 니어링과의 대담

아흔 살의 관점 : 헬렌 니어링과의 대담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 1883 - 1983)은 20세기 전반기 미국의 저명한 급진적 사회비평가 H. L. 멘켄에 의하여 당대 최고 수준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평가되었다. 그 자신의 말을 빌어 <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서 스코트는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줄기찬 반역을 멈추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대학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정치적 공적 생활의 위축을 강요당하였다. 자신에게 가해진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생애의 마지막까지 스코트는 독립적 지식인으로서 미국과 세계의 여러 곳에서 자신의 견해를 저술과 강연의 형태로 꾸준히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의 세속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코트의 삶이 하나의 범례가 될 수 있는 것은, 특히 그가 40대 중반에 만난 평생의 반려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과 함께 극히 소박하고 건강한 자족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함으로써 현대적 상황에서 매우 드문 <충만한> 생애의 궤적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유럽에서 음악수업을 받던 처녀 시절의 한때 인도출신의 종교사상가 크리슈나무르티와도 깊게 교류한 경험이 있는 헬렌 니어링은 스코트와 함께 누렸던 <대지에 뿌리박은 삶>을 몇권의 책, 특히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1992)에서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다. 여기 소개하는 것은 최근 아흔살을 맞이한 헬렌이 태미 사이먼(Tami Simon)이라는 저널리스트와 나눈 회견 기록의 일부를 옮긴 것인데, 출전은 Whole Earth Revier 1994년 겨울호이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스코트가 백살에 죽을 때까지 53년간 함께 살았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땅으로 돌아가자>라는 운동을 50년 앞선 것이었으며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모범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흔 살인 헬렌은 메인주의 하버사이드 농장에서 지금도 건강하고, 아름답게 현명하며, 탁월한 삶의 기술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대담자 성장과정에 대해서 조금 말씀해 주십시오. 

헬렌 나는 아주 운이 좋았어요. 나는 좀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우리 가족들은 지식인이었고 음악적이고 예술적이었어요. 뉴욕교외에서 살았는데, 그들을 만나러 오는 유럽사람들과 많은 접촉이 있었어요. 채식주의자였고 - 1800년대 말에 말이지요 -- 동양의 종교에 관심이 있었고 시민단체들의 회원이었고 대단히 박애주의적이었어요. 나는 내가 그 집안에 태어날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내가 그들을 골라냈다는 거지요. 어려서 바이얼린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얼마간 재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어요. 대학에 - 바사르나 웰레슬리 - 가는 것과 바이얼린을 공부하러 유럽에 가는 것 중에 선택을 해야 됐는데 유렵을 선택했어요. 열일곱살에 집을 떠나서 여러해 동안 외국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돌아와서 스코트 니어링을 만났고 새로운 삶이 전개되었지요. 다소 음악이 결핍된 삶이었는데 그건 스코트가 전혀 음악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예요. 나는 연주를 계속했지만 음악가로서의 경력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어요. 그걸 후회한 일은 없어요. 이 세상에 훌륭한 바이얼린 연주자는 많지만 스코트와 내가 함께 한 일, 숲속에서 살며, 우리가 먹을 음식을 기르고 우리가 살 집을 짓고, 우리가 쓸 나무를 베고 전반적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우리의 지적인 관심과 노력도 계속하고 말이예요.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좀 경박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가 제안하는 것에 즉각 반응을 했고 그와 같은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통해서 훈련이 되었어요. 그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신녕이 굳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그전에 누구에게서도 그것을 느껴본 일이 없어요. 

우리는 아주 충만한 삶을 살았어요. 우리는 그것을 좋은 삶이라고 불렀지요.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삶이었어요. 누구에게나 그렇지는 않았을런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랬어요. 나는 지적이고 음악적이고 예술적인 세계를 떠나서 숲속에서 살러 간 것에 대해 아무런 후회도 없어요. 풍성한 삶이었고 만족스러웠고 충족감을 주는 것이었어요. 

대담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난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어떻게 묘사하시겠습니까? 

헬렌 외부 사람들에게 그는 자기의 지적 육체적 일에만 관심이 있는 엄격한 사람으로 보일 거예요. 그러니 그는 아주 드문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는 특히 이상주의자였고 돈이나 출세나 지위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는 배우고 기여하는 데 관심이 있었고 세상이 사람들이 살만한 좋은 세상이 되도록 돕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대담자 버몬트로 이사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요? 

헬렌 스코트는 너무나 <급진주의적>이었기 때문에 여러 대학에서 쫓겨났어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는 9년 동안 재직했는데 공장과 광산에서의 어린이 노동에 반대한 것 때문에 쫓겨났고, 오하이오의 툴레도 대학에서는 전쟁(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공공연히 반대했기 때문에 해고되었어요. 그는 그것이 이상주의적인 전쟁이 아니라 상업적인 전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스워스모어 대학에서도 해고되었어요. 내가 그를 만났을 때 스코트는 아무 일자리도 없었어요. 어떤 학교에서도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뉴욕에서 빈민지역에 살면서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스코트의 책들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지요. 음식은 거리에 수레에서 샀어요. 스코트는 우리가 시골에서는 우리 자신을 더 잘 보살필 수 있고 더 값싸고 쉽게 살 수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버몬트주에 가서 잘 돌보지 않아 무너져 가는 오래된 농장을 찾아냈어요. 그것을 1100달러 주고 사서 -- 우리 둘이 가진 돈이 그만큼 됐어요. 1932년에 숲속에 살러 갔지요. 

나는 채소 가꾸기, 나무 자르기, 집짓기, 요리, 집 돌보기와 일반적으로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웠어요. 그 전에는 평생 한번도 나 자신에게만 살아있는 허황된 삶을 살아왔어요. 여기서 나는 세상에 쓸모있고 나 자신에게 쓸모있고 스코트에게도 쓸모있게 되었어요. 그에게 비서노릇을 해주었고 타자도 치고 글 쓰는 것도 도와주었고, 우리는 예외적으로 만족스럽고 생산적인 삶을 함께 이루었어요. 

대담자: 당신과 스코트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런 소박한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헬렌 그래요. 우리는 모든 것을 가졌었지요. 여행도 해보았고 어느 정도까지 학교교육도 받았지요.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우리자신을 보살피기에 특별히 잘 갖추어져 있었을 거예요. 가난했던 사람들은 사치를 좀 맛보기를 원하고 시골에 가서 힘들게 일하는 데에 관심이 없지요. 

대담자 당신은 버몬트에서 단풍시럽 사업을 하셨지요. 

헬렌 자작농을 하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돈을 구해야 돼요. 세금을 내고 트럭을 사고 창고에 지붕을 새로 잇고 씨앗을 사고 할 돈 말이죠. 주위의 농부들 거의 모두가 단풍시럽과 설탕을 만들어서 현금을 벌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가까이 있는 농부에게 가서 그를 도와주고 배웠지요. 스코트가 우리 농장에서도 사업을 시작했어요. 우리는 꽤 이익이 남는 사업을 이룩했어요. 버몬트에 머물러 있으면서 단풍시럽 사업으로 돈을 상당히 벌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메인주로 와서 블루베리를 환금작물로 삼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요. 블루베리를 가지고는 돈을 훨씬 적게 벌었지만 자유로운 시간이 훨씬 많았고 우리는 돈보다도 자유로운 시간에 관심이 더 많았지요. 블루베리가 우리의 세금과 지출을 충당해 주었어요. 

대담자 그리고 당신은 수맥을 찾아서 이 장소를 골랐지요? 

헬렌 버몬트의 우리 농장에서 수맥을 찾는 사람을 불러서 물을 찾게 했었어요. 나는 그사람이 수맥을 찾고 있을 때 뒤에 있었어요. 그 사람이 막대기를 던져 버리길래 내가 그것을 주웠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막대기가 내려갈 때 내 막대기도 내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래, 나도 수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인지 몰라 하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람 앞으로 달려 갔는데 내 막대기가 내려갈 때 그의 막대기도 내려갔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수맥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가 메인주에 와서 자리를 찾을 때 우리는 물 옆에 있고 싶었어요. 좋은 땅을 갖고 싶었고 그저 여름을 지내는 장소가 아니라 농장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커다란 메인주 지도 위에서 수맥을 찾고 이 세사지 요구를 했지요. 지도 위에서 수맥을 찾는 막대기가 골라낸 곳에 결국 우리는 와서 살았어요. 물이 옆에 있고, 땅도 좋고 여름을 지내는 곳이 아니라 농장을 가졌어요. 그러니까 나는 그 장소를 지도 위에서 수맥을 찾아서 찾아낸 거예요. 

대담자 이 집을 지으셨을 때 당신과 스코트는 나이가 얼마였습니까? 

헬렌 나는 일흔이 넘었고 스코트는 아흔이 넘어 있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내가 30대 40대이고 스코트가 60대였을 때 버몬트주에서 아홉 채의 돌집을 지었어요. 

대담자 70대이고 90대인 사람들이 이 돌들을 운반하는 것을 상상하니 좀 놀랍군요. 

헬렌 스코트는 손수레에다 콘크리트를 섞고 내가 돌 하나하나를 놓았어요. 잘라낸 돌은 하나도 없어요. 어디에나 좋은 얼굴을 한, 편편한 좋은 면을 가진 돌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어요. 못생긴 돈 무더기도 많이 있었고 모퉁이 돌도 무더기로 있었어요. 마치 목수가 목재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집을 짓기 시작하기 전에 돌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어요. 

대담자 노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는 맞지 않는 일입니다. 

헬렌 나는 사람들의 인식에 거스르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손님방이나 작업실이나 헛간이나 온실 같은 것이 필요하다면 무엇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하게 하나요? 주위에 돌이 많이 있으니 돌로 집을 짓는 건 자연스런 일이지요. 나는 돌일하는 데 선수가 됐어요. 톱은 별로 만지지 않아요. 나는 목수일은 별로 잘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바위는 다룰 수 있어요. 

대담자 이 집에 쓰인 돌이 몇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헬렌 아이구, 수천도 넘을 걸요. 이 돌들은 바닷가의 돌이라 잘아요. 버몬트에서는 화강암이 많았어요. 메인주에서 돌을 더 많이 만졌지요. 돌이 작으니까. 건물은 버몬트에서 더 많이 지었지만. 

대담자 <요리에 반대하는 책>이라는 것을 쓰셨는데, 왜 그런 책을? 

헬렌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을 먹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요. 나는 음식에 그 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익히지 않은 채소와 과일들이 더 생명력이 있고 더 건강한 식풍이예요. 음식을 익히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요. 식품은 본래 익어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있는 거예요. 

나는 가든클럽 회원들에게 날감자 샌드위치를 대접했어요. 감자를 아주 얇게 져몄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날감자인 줄 알기 전에는 아주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대담자 당신과 스코트는 어떻게해서 단식을 하기 시작했습니까?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확신하셨습니까? 

헬렌 글쎄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뭔가 성글고 내핍을 좋아하는 면이 있는지 모양이예요. 우리는 둘이 한꺼번에 단식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어요. 죽을지 안 죽을지! 그래서 내가 물만 마시며 열흘 동안 단식을 하고 스코트가 집과 방문객 등을 돌보며 계속 식사를 했어요. 내가 그걸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그사람도 단식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나서는 함께 했지요. 그렇지만 즐거운 일이예요. 시간이 더 많지요. 일하고 놀고 걷고 수영하고 채소를 가꾸고 할 시간이 충분해요. 스코트와 나도 음식에 시간을 좀 내기는 하거든요. 그렇지만 음식에 쓰는 시간을 점점 더 줄였고 그건 좋은 일이예요. 

나는 세상에 있는 온갖 요리책을 생각하고 거기다가 한권을 더 보탤만큼 내가 뻔뻔스러운 것이 이상했어요. 하지만 출판사에 요청을 했고 나는 단순한 사람들을 위한 단순한 요리책을 써주겠다고 말했지요. 그 사람들 말이 고객을 모욕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목을 <좋은 생활을 위한 단순한 음식>으로 하기로 했지요. 그 책의 반 가량이 음식과 식이와 요리에 대한 이야기예요. 요리처방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어요. 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들었어요. 3*5 인치 카드에 써넣을 수 없는 요리는 사용하지 않았어요. 

대담자 당신과 스코트는 음식과 관련이 깊은 휴일들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 단식을 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헬렌 내가 부모님을 플로리다까지 태워다 드렸는데 부모님이 친구집에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셨어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렌지쥬스 한 갤런을 사가지고 해변에 가서 수영과 일광욕을 하며 오렌지쥬스를 마시며 추수감사절을 지냈어요. 그 일을 스코트에게 편지로 써보냈는데 그는 언제나 그렇게 하자고 말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잔치를 하고 많이 먹을 때 우리는 단식을 하자, 쥬스만 마시거나 전혀 먹지 말거나 하자고 말이지요. 

대담자 당신과 스코트는 의사를 자주 보았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의(家族醫)가 있고 규칙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건강진단을 하는데요. 

헬렌 우리는 의사에게 자주 가지 않았어요. 지금도 안갑니다. 15년전에 한 유명한 의사가 반고르에서 우리를 보러 와서 -- 블루베리를 샀던 것 같은데 --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는, <당신들 나이는 이런 일을 할 때는 지난 나이입니다. 병원에 오시겠습니까? 건강진단을 하고 잘못된 데가 없는지 알아보도록 해주십시오, 그 나이에 그렇게 건강할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했어요. 우리는 <좋아요. 주사는 거절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조사를 해도 좋습니다>하고 말했지요. 그는 우리한테서 잘못된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혈압도 좋았고 모든 것이 훌륭했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비타민 B12는 부족하다는 걸 알아냈어요.(그는 B12 전문가였어요.) 스코트는 그에게 <당신의 B12테스트는 우리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 고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테스트가 우리에게 적용되어야 할 이유가 없지요>라고 말했어요. 

우리를 진찰한 그 의사는 스코트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갔어요. 그가 우리에게 B12가 부족하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느라고 집에서 먹는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할 때에는 B12를 보충하는 음식을 먹었어요. 지금은 그런 걸 먹지 않아요. 필요하지가 않아요. 집에서 살면서 좋은 음식을 먹으니까요. 

대담자 그 후에 의사를 만난 일이 있습니까? 

헬렌 예, 노안이 되어 시력이 나빠져서요. 전화번호부를 보면 8자와 3자가 구별이 안돼요. 뉴욕에서 전화 박스 속에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서 전화번호를 읽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안과의사에게 가서 안경을 맞추었는데 그걸 쓰는 걸 늘 잊어버려요. 가까운 것을 읽을 때 쓰는 안경을 가지고 있어요. 스코트도 가지고 있었어요. 

대담자 그럼, 혹시 두통이 있으면 ... 

헬렌 나는 머리가 아픈 일이 없어요. 나는 사실 두통이 어떤 것인지 몰라요. 

대담자 감기가 걸리거나 복통이 있거나 하면요. 약국에서 파는 약을 사지는 않으시겠지요? 

헬렌 몸이 그걸 보살필 기회를 주기 위해 당장 먹는 것을 중단하지요. 물이나 사과즙이나 사과쥬스를 많이 마시고요. 먹지 않으면 어떤 감기라도 사흘이면 떨어져요. 그리고 그것은 어쨌든 몸에 아주 좋은 휴식이 돼요. 

대담자 스코트의 죽음은 주목할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신체조직의 과정이 그의 죽음을 정하도록 두지 않고 그는 죽을 시간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헬렌 그는 쇠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100살이 되기 두어달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됐어. 이제 그만 먹고 가야 겠어. 그리고 그는 정말로 갔어요. 먹기를 그쳤고 한달 반 동안 액체만 마시다가 마지막에는 물만 마시고 갔어요. 그런데 괴로움도 없었고 통증도 없었고 특별히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대담자 무엇이 그런 결정을 하게 했을까요? 

헬렌 그의 삶의 충족성이지요. 그리고 -- 내가 땔 나무를 가져오는데 그가 이렇게 말한 일이 있어요. 당신을 위해서 땔나무를 가지고 올 수 없게 되면 나는 가는 게 좋아, 라고요. 우리는 단식을 많이 했고 그래서 단식을 시작하고 끝은 내는 건 쉬웠어요. 

대담자 스코트의 이 마지막 단식에 대한 당신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헬렌 <아주 좋은 생각이예요>였어요. 내가 그때에 도달하면 나도 똑같이 할 거예요. 그것은 짐승들이 하는 방법이예요. 떠나가서 물만 먹고 지내다가 끝을 내는 거예요. 조용히 혼자 죽지요. 그것이 자연스러운 방법이예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이나 노인요양소 같은 곳은 피할 생각이예요. 그런 것은 내게는 필요 없어요. 

대담자 <맙소사, 스코트를 잃어버리는 구나. 그가 내게서 떠나가는 구나>하는 느낌을 가지셨습니까? 

헬렌 그렇지만 그를 잃어버린 게 아닌 걸요! 그는 여저히 내 의식 속에 많이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가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연속성이 있고 그는 다른 일, 다른 관심사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그를 만날 거예요. 그리고 혹시 만나지 않아도 그가 잘 있고 어디 다른 곳에서 살며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 거예요. 

대담자 당신은 남편이 숨을 거둘 때 함께 있었습니까? 

헬렌 그럼요. 그는 이 방에서 간이침상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가 가려고 한다는 걸 알아채고 그를 격려해주었어요. 가세요. 해치우세요. 당신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어요. 이제 가서 저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세요. 당신은 운이 좋아요, 라고 말했어요. 

대담자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방안의 느낌은요? 

헬렌 커다란 정적과 커다란 확신의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또 하나의 기화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것이 <나>를 위한 기회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내가 그를 도와서 계속 나아가게 해줄 기회였어요.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기꺼이, 쉽게, 그리고 가식없이 갈 수 있기를 바래요. 그는 숨을 조금씩 덜 쉬더니 떠났어요. 떠나가는 좋은 방법이지요. 그는 삶에서나 죽음에서나 나에게 모범이었지요. 

대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 우리의 문화는 죽음에 대하여 당신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죽음은 대개 정신적인 충격으로, 비극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헬렌 나는 죽음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어요. 흥미로울 거예요. 

대담자 여기서 90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스스로 돌보고 계십니까? 채소밭도 집도 혼자서요? 

헬렌 그렇게하고 싶지만, 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처녀아이 하나가 일주일에 한번 와서 채소밭일을 나와 같이 해요. 또 다른 친구가 서류일 같은 것을 도와주어요. 타이핑도 해주고, 대부분의 타이핑은 내가 스스로 하지만. 나는 모든 일을 직접 하고 싶은데 이 친구들이 오고 다정하고 친절해요. 나는 기쁘게 그들이 하는 일을 받아들이지요. 

그렇지만 아무런 접촉없이 혼자서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혼자서 해나갈 수 있어요. 약간 움츠려야 되겠지요. 어쩌면 채소밭은 조금 줄여야 될지 몰라요. 그리고 병조림 같은 것도 덜 만들고, 생활이 더 간결하고 느슨해지겠지요. 나는 간결하고 느슨한 생활을 좋아해요.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해요. 

대담자 혼자 있음으로써 어떤 집중이나 긴장이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을 느끼십니까? 아니면... 어떻게 묘사하시겠습니까? 

헬렌 아주 잘 말했어요. 혼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그들이 함께 있는 것 때문에 변형되거나 흐트러지지 않는 어떤 집중이 가능해요. 

대담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집중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들은 텔레비젼에서 큰 사건들을 보고 인기있는 영활를 보러가고 하면서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느끼는 것에 애착을 느낍니다. 중독이 되어있다고 할까요? 그런 일들의 한 부분이 되지 못하는 것,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을 애석히 여긴 일은 없습니까? 

헬렌 그것의 한 부분이 되지 못한다는 느낌은 있어요. 그렇지만 그걸 애석히 여긴 일은 없어요. 화면이나 소리상자에게 발생하는 자극은 내게는 전적으로 불필요해요. 스코토나 나에게 지상의 지옥은 라디오나 텔레비젼의 끊임없는 소음일 거예요. 그리고 그걸 피할 수가 없지요. 일단 그 기계를 켜고 나면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 목소리, 그 생각, 그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그들과 아무런 유사점을 느끼지 않고 기꺼이 그 소음을 꺼버려요. 그리고 기쁘게 그 소음없이 살아요. 

대담자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소음의 원천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헬렌 사람들이 시골에 있고 정적과 침묵 속에 오래 있으며 아마 그것에 익숙해질 거예요. 

대담자 침묵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헬렌 소음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대담자 사람들이 보다 단순한 삶을 살지 못하는 하나의 이유는 아드레날린에 대한 애착입니다. 

헬렌 가지들이 공줌에서 흔들리고 있는 저 나무들은 내다보는 것은 굉장히 흥분된 경험이예요. 그리고 나무는 무엇인지, 나무는 왜 여기에 있는지, 또 나무의 삶은 어떠한지에도, 자연의 모든 것에 흥분이 있어요. 사람에도. 우리는 막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의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우리는 삶을 우리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어요. 

대담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당신의 원칙은 인간 생존의 조건 자체와 모순이 되는 것 같습니다. 

헬렌 우리가 풀 위를 걸으면 풀이 구부러져요. 나는 사과나 무를 먹을 때 그것에 사과를 해요. 내가 누구길래 이 아름다운 생명을 베어먹는 건가? 그래요. 우리는 모두 만드는 만큼 망쳐요. 좋은 일은 가능한 한 많이 하고, 해는 가능한 한 적게 끼치자는 자세가 중요하지요. 

망치는 것은 우리 삶의 일부예요. 나는 <너의 행동을 의식해라.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해라. 가능한 한 해를 적게 끼치고 가능한 한 선을 많이 행하라>라고 말해요. 그 정도밖에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행동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는 거예요. 

스코트가 자주 사용한 좋은 말이 있어요. <당신이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친절하라>예요. 그 말은 살아가는 원칙으로 삼기에 괜찮은 말이지요. 올더스 헉슬러는 육십인가 칠십이 넘어서 그의 모든 공부와 작품과 연구를 모두 무색케 하는,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조금 더 친절해지는 것임을 깨닫고서 느낀 당황함에 대해서 썼어요. 버트란드 러셀도 그와 비슷한 말을 했어요. 그도 그 말을 하기를 난처해했지요. 사랑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기초라고 --. 한 사람이 숲속에서 농부로 살면서 전혀 세상에 나가지 않았어도 친절과 단순함의 삶을 살았다면 공헌을 한 거예요. 세상을 더 나쁜 장소로 만든 게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 거지요. 

스코트의 백년째 생일에 이웃 사람들이 깃발들을 들고 조그만 행렬을 이루고 왔어요. 그 깃발 중의 하나에 이렇게 씌어 있었어요. <스코트 니어링이 100년 동안 살아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대담자 당신의 삶의 이 마지막 단계에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느끼십니까? 

헬렌 우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데에는 모두 목적이 있어요. 우리는 공헌을 하고, 배우고, 돕고,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거예요.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또 내가 왜 이곳에 있는 지에 대해서 어떤 개념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나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지구의 모든 배열, 나무들 동물들 그리고 하늘과 석양 등에 대해 큰 경이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항상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목적에 따라 일을 해야 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와 함께 일을 해야 한다고 늘 느꼈어요. 

그리고 우리는 분리된 존재들이 아니예요.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분리되어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전체의 부분들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나는 하느님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그 말을 쓴다면 그것은 온전한 전체를 의미할 거예요. 우리를 통해서 배우고 일하고 존재하는 것, 그래서 나는 혼자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노력하는 거예요. 

대담자 저는 우리가 더 사랑하면 우주가 어떤 식으로 확장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헬렌 그것은 아주 훌륭한 개념이고 아주 명석한 개념이에요. 나는 다른 사람들은 사랑하고 그들의 좋은 점을 인식함으로써 세상의 선(善)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포옹을 하고 입맞추고 할 필요는 없어요. 신체적으로 가까울 필요는 없어요. 대륙의 다른 쪽에 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보내면 그것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발산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늙었거나 쇠약하고 가난하거나 고립되어 있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커다란 일 중의 하나예요. 그래도 사랑을 내보낼 수 있고, 그래서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가 그들이 어디에 있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들의 육체 속에서나 그들이 관련되어 있는 삶 속에서나. 우리는 모두 방에서 나가지 않고도 우리 몫의 사랑을 보탤 수 있어요. 

별이 밝게 빛나는 밤에 하늘을 보면 -- 우리가 속해 있다는 그 특별한 우주의 별들만이 아니예요. 밝은 별로 가득차 있지 않은 하늘은 한 조각도 없어요. 그저 놀라울 뿐이지요. 우주는 거대해요. 그리고 멋지고 장엄해요. 나는 그것에 경의를 보내요. 이 조그만 점, 유리창에 붙어있는 이 조그만 파리 한 마리가 우주에 갈채를 보내요. 주제 넘게도! 


출처 : 부천재활요양병원
글쓴이 : 이언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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