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정복자와 응시,관찰]/깨달음관련

붓다와 목자 - 니코스카잔차스키

가야트리샥티 2013. 5. 13. 16:02

출처 : http://blog.naver.com/lovefulness1/140160982802

 

 

붓다와 목자 - 니코스카잔차스키

 

마음수행

    ‘나’를 철저히 비운 가난이 공(空)의 철저한 체험


    적빈(赤貧)이라는 말이 있다. 아주 가난하여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러한 가난은 아무 것도 없는 가난뱅이의 허기짐이라든가 거지처럼 구걸하는 궁색한 살림살이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바라는 것과 어떠한 두려움도 없는 철저한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가난과 관련하여 향엄지한(香嚴智閑?~898) 선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금년의 가난이 진정한 가난이네.
    작년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금년엔 송곳마저 없도다.
    去年貧未是貧 今年貧始是貧 去年無貧錐之地 今年錐也無

    예전에 가난은 송곳 세울 땅이라도 있었지만 작년 가난은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올해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다는 것이다. 작년 가난이 뭔가 기댈 언덕도 없는 깊은 가난이었긴 하지만, 거기에는 ‘나’라는 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올해의 가난은 ‘나’를 철저히 비운 가난이다. 그것은 공(空)의 철저한 체험이다.


    이와 관련하여 향엄적빈(香嚴赤貧)이라는 화두가 전한다. 허지만 여기서 화두와 관련한 얘기를 하지는 않겠다. 여래선이니 조사선이니 하는 말도 꺼내지도 않겠다. 다만 향엄선사의 철저한 가난, 그 적빈의 경지에서 얼마나 선사들이 자신을 비워 무소유를 피부 깊숙이 새기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갔는지를 살펴보련다. 적빈에는 어떠한 털끝만큼의 번뇌도 집착도, 분별도 들어올 틈이 없다.


    진정 자유로운 삶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는 니코스카잔차스키(1883~1957)의 무덤과 그 무덤 앞을 지키는 묘비명이 서 있다. 그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 묘미명은 생전에 그가 미리 지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니코스카잔차스키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로 일컬어진다. 그는 당시 유럽 정신과 문화를 지배했던 기독교를 버리고 불교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평화를 얻는다. 그러한 그의 바람은 그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에 잘 투영되어 있다. 이 책은 실제로 그가 조르바를 만나면서 겪었던 일을 소설로 그려낸 것이다. 실화소설인 셈이다. 이 책에서 니코스카잔차스키는 『붓다와 목자』의 대화 대목을 떠올린다.

    목자 : 내 식사는 준비되었고 암양의 젖도 짜 두었습니다. 내집 대문은 잠기어 있고 불은 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 내게는 더 이상 음식이나 젖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내 처소이며 불 또한 꺼졌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 내게는 황소가 있습니다. 내겐 암소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목초지가 있고 내 암소를 모두 거느릴 씨받이 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 내게는 황소도 암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 내게는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양치기 여자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여자는 내 아내였습니다. 밤에 아내를 희롱하는 난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 내게는 자유롭게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영혼을 길들여 왔고, 나와 희롱하는 것도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니코스카잔차스키에게는 이 두 목소리가 잠들 때까지 들려온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잠긴다. 폭풍이 일면서 목초지와 암소와 종우와 황소는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바람이 지붕을 날려버리고 여자는 울부짖다 진흙탕 위에 쓰러진다. 목자가 통곡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카잔차스키는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든다.


    안전한 땅과 집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한 목자에게 아무리 비가 내려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 착하고 부지런한 부인까지 있고 그런 부인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해 한다. 창밖에서 아무리 비가 내린들 자신은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결국에 폭풍우가 일자 그런 안전한 집은 물속에 가라 않고 여자도, 목자도 울부짖는다.

    그러나 붓다에겐 그러한 고통이 없다. 붓다는 철저히 자신을 비워 한 톨의 겨자씨도 가진 것 없고 특별히 바라는 바도 없다. 철저히 가난하다. 적빈이다. 그래서 두려움의 흔적조차 없다. 한없이 자유롭다. 또한 붓다는 영혼을 길들여 그 착한 영혼을 부인 삼아 희희낙락하기 때문에 반려자와 더불어 행복하다.

철두철미한 가난, 그것은 공이다. 무원(無願)이며 무상(無相)이다. 텅 비어 있어,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떤 틀과 모습에 가두어 놓을 수 없다. 어떤 형상도 그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을 구속할 수 없다. 어떤 압제도, 어떤 이념도, 신도 부처님도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그는 자유다. 그에게 번뇌와 근심은 없다. 그렇게 유럽풍으로, 그리스풍으로 살아간 멋진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