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정복자와 응시,관찰]/깨달음관련

색즉시공 공즉시색

가야트리샥티 2012. 12. 18. 14:17

 

화두:


공(空)함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



해석(사유):


공하다는 것은 '빌 공(空)'자를 쓰는 것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공함'은 텅 비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은 이원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료됩니다. 우리는 육신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육체를 육체(덩어리)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상념) 자체가 우주(주체)와 사물(객체)로 따로 인식하는 이원성의 상념인데, 그것은 사실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원성의 상념 자체가 의미가 없고 무상하다는 것이죠. 우주는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데서 기인하는 논리입니다. 과학의 초끈이론과 일맥상통할까요. 그보다 더 거창한 '하나'일 것입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神(하나님)'이 바로 그 '하나'이죠. 근원. 근본. 본질.
나의 '안이비설신'이 '색성향미촉'을 인식하여, 그것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것 같지만 그것은 단지 '나'라는 전기적 집합체(에너지장)로 흘러들어오는 '색성향미촉'의 전기적 신호에 반응하여 일어나는 에너지흐름의 일시적 상호작용일뿐이며, 그것은 잠시 일어났다가 소멸되는 호흡, 또는 바람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그것(존재에의 집착, 이원적 분리의식)에 '의'를 빼앗길 경우 이를 '법'이라 생각해버리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에고'(ego, 망상, 허영, 카르마, 껍데기)를 본질적 마음위에 창조하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그 집착과 에고의 창조를 덧칠하고 덧칠하고 겹씌우고 겹씌울수록 그것은 점점 두꺼워지고 단단해져서, '고통'을 덩달아 창조하게 됩니다. '고통'이란 것은 본성이 '부자연스러움'을 깨부수려는 일종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인간의 육체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한정된 의식(지각)은 꼬인 실타래와 같이..
본래 단 한 가닥의 줄(진리)이 꼬이고 꼬여서 덩어리 뭉치(존재)로 보이기 때문에 본질(한 가닥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고, 그 꼬인 실타래를 풀어헤치는 과정이 '진화' 이자 '영적 신장'의 과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단서인 '실끝'이 실타래 속에 꼭꼭 숨어 있듯, 실제 우리 육체와 혼 속에 녹아 꼭꼭 숨어있는 것이 우리의 본질인 영(令)이자 하나님의 씨앗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실타래가 아주 복잡하고 커다랗게 꼬여있는 경우도 있고, 단숨에 풀어헤칠 수 있도록 순수하게 묶여있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은 모두 같은 말 같은 뜻인데..
즉 '색=공'이라는 뜻이죠. '실타래'와 '실'은 그저 같은 '실'일 뿐이니까요.

그러니... 육체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단지 진동하는 전기신호의 에너지장 들이 여러가지 패턴과 진동수의 종류로 형상화되어, 또는 심상화되어 잠시 생성되었다가 다시 소멸되어가는 일련의 호흡(물결)들이니.. 그것을 버젓이 '나의 것'이라 여겨 너무 고통스러워하거나 좋아라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고 무상하다는 뜻이라 사료됩니다. 참자아는 본래 '주객'이 없는 우주 그 자체이고, 주체와 객체처럼 보이는 자아(自我)와 타아(他我)는 모두 하나의 불성(佛性, 神)임을 깨달아나가는 잔물결들의 일렁임인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