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할 때 느낌을 알아차리는 실제 방법.
1) 미세한 느낌 알아차리기
미세한 느낌은 편안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방법이다. 먼저 몸이 있다는 것을 모양으로 알아차리고, 알아차림이 이어짐에 의해 마음이 안정되면 점차 그 안에 있는 느낌(빠라마타)를 알아차린다. 몸의 한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알아차릴 수도 있고, 몸 전체의 느낌을 크게 알아차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좌선을 시작 할 때 우선 몸이 앉아있다는 것을 모양으로 알아차린다. 이제 마음으로 머리부터 발까지 몸의 느낌을 죽 훑어 내려가면서 서로 닿아있는 부분(눈꺼풀, 입술, 손바닥, 엉덩이)의 모양과 그곳에 실재하는 여러 가지의 감각들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그 느낌들이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느낌들을 알고 있는 마음도 그 느낌과 함께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거친 느낌 알아차리기
거친 느낌은 저절로 인식될 만큼 강하게 나타나는 느낌이다. 주로 가슴에 콩닥거리는 느낌이나 또는 머리가 무거워지거나 화끈거려 저절로 알게 되는 느낌이다. 특히 화가 날 때나 통증이 있을 때 몸에서 일어나는 열감이나 쑤심, 몸의 전율 등은 거친 느낌이다. 주로 현재의 대상에 대하여 정신적 느낌까지 넘어간 경우에 몸에서 거친 느낌으로 표현된다.
수행자가 이런 거친 느낌들을 빨리 알아차리면 그런 느낌을 일으킨 원인되는 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느낌에서 마음을 보고 다시 거친 느낌이 변화되면서 사라질 때까지 그 느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다시 주 대상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간다.
이런 과정은 수행자에게 알아차림을 이어가도록 해주고 또 현재의 느낌에서 마음을 알아차려 번뇌의 뿌리를 알게 하는 것으로서 번뇌를 제거하는 힘이 된다.
3) 수념처에서 느낌과 연계된 마음을 볼 수 있다.
모든 느낌은 일어날 때 느낌 혼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온이 함께 일어난다. 그러므로 거친 느낌을 알아차리면 그 느낌을 일으킨 원인이 되는 마음을 함께 볼 수 있다.
1) 6경(색성향미촉법)과 6근(안이비설신)이 만날 때 -색(色蘊)
2) 대상을 받아들여 아는 의식작용과 (識蘊)
3)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느낌의 감수작용과(受蘊)
4) 대상을 개념화하는 지각작용과(想蘊)
5) 대상에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하는 의지작용 (行蘊) 의 다섯 가지 무더기가 한 순간 함께 일어났다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느낌 안에는 반드시 마음도 함께 있으므로 느낌을 통해 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어떤 느낌이든지 일어나면 느낌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고, 즉시 그 현장으로 가서 “지금 무슨 마음인가?”하고 느낌을 아는 그 마음을 보려는 의도를 내어 느낌과 연계된 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그 느낌을 일으킨 원인이 되는 마음이나, 이미 그 느낌에 반응한 마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마음을 보는 심념처를 한 뒤에 즉시 몸으로 돌아와 다시 그 느낌을 알아차리면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를 다 하면서 알아차림도 잘 유지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느낌과 마음을 함께 알아차리는 수행법
통증과 망상은 초보 수행자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장애(손님)이다. 통증이나 망상이 있을 때 이것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수행이고, 이것을 싫어해서 망상이나 통증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알아차림을 놓치고 망상이나 통증에 넘어간 것이다.
수행자는 망상이나 통증이 있다는 것을 마음이 느낌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이런 장애들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접수하여 알아차린다.
망상이나 통증에 대한 알아차림
1) 몸에 느낌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 sati.
- 통증이 있거나, 망상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2) 지금 무슨 마음인가? 하고 현재 일어난 마음을 알아차린다. - 심념처.
-통증에 반응한 마음(성냄)을 보거나,
-망상을 일으킨 마음이나 망상한 것에 반응한 마음을 알아차린다.
3) 다시 몸의 느낌을 알아차린다. - 수념처
- 통증과 연계된 마음, 즉 통증을 싫어한 마음이 일으킨 몸(가슴이나 머리)의 느낌을 알아차린다.
- 망상의 경우는 망상 때문에 일어난 몸(가슴이나 머리)의 느낌을 알아차린다.
이런 느낌들이 거친 느낌에서 점차 미세한 느낌으로 변화되어 사라질 때까지 느낌의 변화를 계속 주시하여 알아차린다.
4) 다시 수행의 주 대상 (호흡, 몸의 움직임 등 이 순간 분명한 대상)으로 돌아와 알아차림을 이어간다. - 신념처
이런 수행방법은 한국 위빠사나 선원만의 독특한 수행법이다. 어떻게 수행자가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더불어 신수심법 4념처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수행기법이다.
느낌에서 마음을 보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느낌에서 마음을 보면 원인과 결과를 통찰하는 직관적 지혜가 개발된다. 지금의 느낌을 일으킨 원인을 알아 이 느낌에 넘어가지 않고 이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지혜가 생긴다. 즉 현재의 느낌에서 더 이상 번뇌의 화살을 맞지 않고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
만일 그 느낌의 원인이 탐진치의 마음이었다면, 알아차림에 의해, 탐진치의 마음은 과거의 마음으로 이미 소멸이 되었고, 지금은 알아차린 마음이 현재의 마음이 되어, 그 순간은 탐진치의 행위를 할 수 없다.
만일 그 느낌의 원인이 관용 자애의 선한 마음이었다 하더라도 알아차림이 있으면 선한 행위에 대한 만족감으로 들뜨지 않는다. 그래서 선업에 대한 과보도 바라지지 않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가장 적절한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선한 행위를 할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착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고 그것은 다시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느낌에서 마음을 볼 때 수행자가 느낌에서 원인을 찾으려하면 안된다. 생각으로 원인을 찾으려하면 그 순간 알아차림을 놓치게 되고 사유로 빠져 망상으로 넘어간다.
단지 느낌이 나타날 때 즉시 " 지금 무슨(어떤) 마음인가? " 하고 마음을 보려는 의도를 내어, 그 순간의 느낌에 묻어있는 마음을 직관으로 느껴서 알아져야한다.
수행자에게는 알아차리는 의무만 있다. 알아차린 뒤에 오는 결과는 수행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리는 힘이 스스로 결정한다.
만일 거친 느낌에서 마음을 보았는데, 그 순간 어떤 마음도 볼 수 없었다하는 경우에도 새로 마음을 보려는 의도를 낸 것으로 이미 마음을 본 것이다. 이미 느낌을 일으킨 원인의 마음은 사라졌고 알아차림을 하는 선한 마음이 일어난 것이므로 느낌을 일으킨 마음의 파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때 알아차림이 지속되지 않으면 느낌에서 원인되는 마음을 보고도 그 마음에 머물러 알아차림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원인이 되는 마음에 휘둘리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보고 즉시 몸의 느낌을 잡아서 알아차림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2) 느낌을 알아차려 보면 느낌은 한 순간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즉시 사라져버리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느낌의 생멸을 보는 것이 수념처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수념처에서 현재의 느낌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그 느낌을 내 것이라고 집착하면 느낌의 생멸을 볼 수 없고, 오히려 느낌에 대해 갈애와 집착으로 업을 생성해서 다시 생과 노사로 이어진다. 결국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진행 시키면 익어서 맺는 결실은 유신견이다.
유신견은 윤회의 주범이며 괴로움의 원인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조건에 의해 밀접한 관계성을 지니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흐르는 과정의 존재일 뿐, 변하지 않고 실제로 상주하는 어떤 존재는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수념처에서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느낌의 성품을 보지 못하면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무명(유신견)에 의해 갈애가 일어나고, 그 결과로 탐진치에 의한 불선업을 짓게 된다.
1) 괴로운 느낌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 괴로운 느낌에 대하여 반응한 마음을 먼저 알아차려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괴로운 느낌을 직접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이미 괴로운 느낌에 마음은 안정을 잃고 들떠 있기 때문에 괴로운 느낌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겨냥하지 못하고 계속 괴로운 느낌에 의한 번뇌의 화살을 맞게 되어 괴로움이 더욱 증폭된다.
즉 현재의 괴로운 느낌에 대해 싫어한 마음을 알아차리면 이 마음은 사라지고, 알아차림에 의한 안정된 마음이 일어나 비로소 괴로운 느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느낌의 성품을 볼 수 있게 된다.
만일 반응한 마음(두려움, 근심 걱정하는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계속 괴로운 느낌을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므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현재의 괴로운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좌선 중 통증이 생기면, 통증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이때 통증에 반응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통증을 싫어하며 통증이 빨리 사라지길 바라고, 또 통증이 사라지지 않으면 화를 내면서 통증과 싸운다.
계속 정신적 괴로운 느낌으로 발전하여 통증은 더욱 커진다. 이런 마음 상태는 통증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수 없게 한다. 이때는 이미 알아차림을 놓치고 느낌에 넘어간 상태다. 그러나 이렇게 진행된 경우라도 그 상태를 다시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이다.
2) 몸의 괴로운 느낌을 마음이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알아차리면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지혜가 생긴다. 그러면 몸이 아플 때 마음까지 아프지 않게 된다.
본래 아프다 하는 것은 물질인 몸이 아픈 것인데, 이것을 내 통증이라고 보면 "큰일 났네! 계속 아프면 어쩌지!" 라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 함께 아프게 된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괴로운 느낌을 더욱 증폭시킨다.
괴로운 느낌을 단지 육체적 느낌으로 볼 수 있을 때, 몸이 아플 때 마음까지 아프지 않게 된다.
3) 일상의 모든 선한 행위나 불선한 행위에는 그 행위로 인한 정신적 느낌이 함께 있다. 선한 느낌이나 불선한 느낌이나 둘 다 반드시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다.
불선한의 행위의 느낌들 (탐진치의 행위들)은 괴롭기 때문에 알아차리기가 그래도 좀 수월하다. 그러나 선한 행위의 느낌(보시, 관용, 자애, 지혜로 한 행위들)은 편안하고, 만족스럽고 좋은 느낌이라 더욱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좋은 느낌을 내 것이라고 집착하고 아만심이나 유신견을 키워 새로운 불선업의 원인을 만든다.
그러므로 선업인 보시를 할 때도 반드시 ‘지금 무슨 마음으로 보시하는가?’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보아 주어야한다. 그 때 ‘내가 보시한다.’는 유신견과 '보시로 인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먼저 알아차려 주고, 그 마음이 알아차림에 의해 소멸한 뒤, 순수한 마음으로 보시를 해야 한다. 이렇게 행한 청정한 보시는 어떤 과보도 생성하지 않아 윤회를 끊는 원인이 된다.
'[내면의정복자와 응시,관찰] > ♡♥ 명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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