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노의 경우처럼, 욕망을 쫓는 한, 우리 마음에는 행복도 편안도 깃들지 못합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한 듯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마음을 관찰해 보면,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시에 살든지, 산 속에 살든지, 해변으로 가든지, 아름다운 공원에 가든지, 아무리
장소를 바꿔 가며 즐기려고 애써도, 음식과 옷 등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려고
애써도, 우리 마음은 항상 무엇인가 부족한 듯이 느낍니다. 주위에 아무리 많은 친구가 있어도,
꽤 오랫동안 그들과 친교를 맺어 왔어도,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2.
일상생활에서 기뻐하거나 즐거워할 때도, 우리 마음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완전한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가까이서
깊이 관찰해 보고, 잘 들여다보십시오. '이 행복이 완전한가, 아닌가?' 완전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모두
고통스러운 장소이다. 우리가 갖는 즐거움은 모두 고통스러운 즐거움이다. 함께 있는 친구도
모두 고통스러운 친구이다." 욕망을 쫓는 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욕망을 쫓는 목적은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는 단지 불만족으로 끝납니다. 욕망을 쫓는 것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
결과는 오직 불만족일 뿐입니다. 또 다시 시도해 봐도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과 비슷합니다. 저는 최근에 멜버른에 머물 때, 그의 인생에
관해서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일생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매우 흥미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매우 효과적인 람림 가르침이었습니다.
3.
그는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쾌락과 흥분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생의 마지막
해에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느꼈을 때, 그는 매우 우울해졌습니다. 그가 부른 마지막 노래의
가사는, "나는 애쓰고 또 애썼지만 만족할 수가 없어"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그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를 보며 노래를 듣던 수천 명의
팬들도 울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우리가 욕망을 쫓는 동안에 우리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항상 무언가 부족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상, 욕망을 쫓는 것
자체가 고통이자 문제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본질적으로 고통입니다. 아무리 욕망을 쫓아가도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욕망의 끝은 늘 불만족입니다. 이것이 윤회 속에서 겪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인생에 문제와 장애를 일으킬까요? 무엇이 우리의 정신 수행에 내적
외적 장애를 일으킬까요? 무엇이 우리의 불법 수행을 방해할까요? 욕망을 쫓는 것과 만족을 찾지
못하는 것이 주범입니다. 라디오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보거나, TV를 시청해 보면,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놓는 재앙은 욕망을 쫓고 만족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4.
우리 자신을 분석하고 질문하면서 마음의 본질을 살펴보면, 우리가 욕망을 쫓는 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욕망을 쫓으면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끼기 때문에 삶이
공허해집니다. 사실은, 욕망의 대상을 얻는 것도 얻지 못하는 것도 둘 다 본질적으로 고통입니다.
우리 마음을 분석하지 않을 때는, 욕망의 대상을 얻고 나면 그 특정한 대상을 얻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는 해결된 듯이 보입니다. 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 대상을 얻음으로써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됩니다. 욕망의 대상을 얻지 못한 데서 왔던 이전의 문제는 그 대상을 얻음으로써
해결됩니다. 그 후에, 인간의 여섯 감각 중의 어느 하나가 그 욕망의 대상과 접촉했을 때 일어나는
느낌의 변화를 가리켜 '즐거움'이라고 이름붙입니다. 그러나 그 감각과 욕망의 대상이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조만간 그 즐거운 느낌은 [고통스러운 고통]이 되고, 견디기 힘든 문제로,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5.
우리가 그 변화를 알아채고, 그것을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고 이름붙일 때까지는, 또한 그것이
고통스러운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우리는 그 경험에게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 느낌은 즐거움으로 나타납니다.
마치 즐거움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듯이 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 느낌은 '즐거움'
이라고 이름붙여진 것에 불과한 데도, 즐거움이란 것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듯이 보입니다.
감각과 욕망의 대상이 접촉을 계속하면서 그 '즐거움'이라는 느낌을 만드는 것과, 나중에 그 느낌이
변해서 견디기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은 그 느낌에게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붙이지만, 종국에는 그것이 정말로 견딜 수 없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상, 그것은 고통일 뿐입니다.
6.
윤회 세계의 '오온'은 업과 미혹 때문에 생겨나는데, '오온'이 대상을 만날 때마다 세 가지 느낌을
첫째는, 고통스러운 느낌인데, 흔히들 그것을 골칫거리라고만 생각합니다. 둘째는 즐거운
느낌입니다.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을 때는 그것이 즐거움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분석하면 단지
고통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중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이지만, 그것도 역시 고통의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온' 자체가 업과 미혹의
씨앗에 의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윤회의 세계, 즉 '오온'에 묶는 업과 미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각 대상을 만날 때 일어나는 모든
느낌들은 고통의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을 쫓는 것이 업을 만들고, 업은 의식에
흔적을 남기고, 그 의식이 다음 생의 윤회를 초래합니다. 그 후에, 우리는 업과 미혹이 지배하는
대로, 다음 생의 윤회와 함께 [조건지워진 본질적 고통]을 다시 겪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고통'을 다시 겪을 뿐만 아니라, 윤회 속의 일시적인 즐거움인 [변화하는 고통]도 다시 겪습니다.
욕망을 쫓는 결과가 오랜 기간에 걸쳐 가져오는 피해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욕망을 쫓는 한,
우리는 윤회의 고통을 끝없이 겪을 것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가 욕망의 대상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느낌을 '즐거움'이라고 부르지만, 그 느낌조차도 결국은 고통일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환각에 빠져 있어서 그 느낌의 성질을 분석하지 않을 때는 그 느낌에게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 그 느낌은 고통일 뿐입니다. 그 때 그 느낌은 우리에게 즐거움처럼 보이고, 우리는
그것이 정말로 즐겁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그 생각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환각에 빠진 우리
마음에는 그 느낌이 순수하게 진짜로 존재하는 행복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은
이런 식으로 순전히 우리 마음에서 나옵니다.
용어설명>
1. 고통스러운 고통: 일반적으로 고통과 불편과 불행이라고 알려진 경험들을 말한다.
2. 조건지워진 본질적 고통: 세 가지 종류의 고통 가운데 가장 파악하기 힘든 고통이다. 업과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오온에는 본질적으로 고통이 스며들어 있다.
3. 변화하는 고통: 흔히들 즐겁다고 생각하는 상태도 일시적 성질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만간
고통으로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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